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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일본의 비열한 왜곡을 바로잡는 것은 일본제국에 항거한 윤봉길의사의 뜻과도 부합하는 것이며, 윤의사의 정신을 받들고 기린다는 그들 단체의 뜻에도 부합하는 것인데... 어찌해서 일본 스스로도 왜곡되었다고 밝힌 점을 우리쪽에서 끝까지 맞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출처:뉴시스>
이 논란이 하나로 귀결되지 않고 알듯 모를듯 무언가 찜찜한 상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기위해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각각의 다른 주장을 하는 입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무릇 어떠한 주장에는 주장하는 사람의 의식이나 가치관, 역사관 또는 이해관계까지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주체를 생략한 채 주장만을 본다면 깊이있는 이해가 어려울 것입니다.
윤봉길의사 체포 사진 진위논란 속 첨예한 대립의 실체는?
윤봉길의사 체포사진이 가짜라는 입장에 속한 사람들은 99년도에 처음으로 이를 제기한 강효백교수를 비롯해서 SBS제작진 등 상당히 폭넓으며, 저도 물론 여기에 속합니다. 건전한 사고와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 중 대부분이 아마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어림해봅니다.
이에 반해 윤봉길의사 체포사진이 진짜라는 입장에는 윤봉길의사의 일부 유족들과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있습니다. 언론에서 자주 보게되는 윤의사의 유족은 윤의사의 직계유족보다는 방계유족 한 두 분이 계시며 강효백교수님의 글에서도 이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참 나쁜 사진-'윤봉길 의사 친조카' 윤주님께 by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다음으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측은 "국과수 감정으로 논란이 끝나길 바랐으나 판독 불가 판정이 나서 안타깝다"며 "가족의 증언과 사료 등을 종합하면 윤 의사 사진이 틀림없다"고 말했으며,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블로그나 카페, 언론 등에서 대대적으로 2011년 3월 SBS특집 방송에 대한 반박을 하였습니다.
사진을 놓고 진위여부를 주장하는 대립된 두 축은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먼저 사진이 가짜라는 주장은 강효백 교수님을 위시하여 SBS측과 다수의 합리적 사유와 근거를 중시하는 입장이며, 통계자료는 없지만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시민들이 속하리라 추측됩니다. 이에 반해서 사진이 진짜라는 주장은 앞서 말씀드린 분들이 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누구인가?
윤의사 체포 사진이 진짜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 중에서 유족에 대해서는 바로 위에 링크한 강효백교수님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만, 그 분들이 왜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여러가지로 추측만 해볼 따름이며 이러한 추측은 근거를 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각자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입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소재한 위 사업회는 1965년 시작되었으며 '매헌 윤봉길의사의 숭고한 유업을 선양하며 살신성인하신 그 위대한 민족정기를 내외에 고양하기 위하여 설립한다'고 설립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은 현재 김학준 동아일보 고문이 맡고 있으며 역대 회장은 모두 정치인이었습니다. 초대 회장은 김용태 전 공화당 원내총무였으며. 이후 곽상훈 전 국회의장, 박순천 전 의원, 김덕룡 전 의원, 이명박 대통령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민자당 대표 시절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 제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회장단의 정치경력과 관련해서 일부 비판적 의견도 있습니다.
여러 근거로 가짜임이 명백해보이는 '윤봉길의사가 체포되는 사진'이 진짜라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류가 있었다면 바로잡으면 될터인데... 말입니다.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해서 하나 둘 관심을 가지고 원인을 파악해들어가면서, 궁금한 점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이주일 시간이 지나면서 뿌옇게 흐렸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고... 최종적인 궁금증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론에 이르게 되는 구체적인 과정들을 세세하게 쓸 수는 없습니다.
[결론]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독립투쟁
원인에서 결론에 이르는 중간의 과정들을 쓸 수가 없어서 매우 안타깝습니다만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원적 이유를 어디서 부터라고 할 것인가는 여러 주장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 일천년래 일대사건'에서 주장했듯이 김부식으로부터 라고 볼 수도 있고, 노론의 집권 또는 세도정치의 시작부터를 그 원인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듯이 좀더 가까운 시점에서 원인을 찾아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의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가장 적기는 바로 해방 후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며, 왜곡의 확대재생산과 고착이 이루어졌던 것을 흔히 '잘못 끼워진 첫 단추'로 사람들은 말합니다.
"갑자기 왜 고리타분한 역사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이미 지나간 옛날일을 파서 좋을 것이 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몰라서'하는 이야기거나 아니면 '겁나서'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일제시대때 나라를 팔고, 독립투사를 고문하며 오직 일신만의 영리를 추구했던 이들의 후손들은 부모의 화려했던 업적(?)을 부정하는데서 시작해서 변조하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래에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 독립투사 | 친일파 |
|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자신과 가족을 버림 |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과 민족을 버림 |
| 일본군을 없애려고 투쟁 | 독립군을 없애려고 노력 |
| 윤봉길 등 많은 독립투사들 | 이완용 등 더많은 친일세력들 |
| 광복후 미군정기간 중 투쟁 | 광복후 미군정기간 중 친미로 세력 유지 |
| 이승만정권때 철저하게 무시됨 | 이승만정권때 각종 공직취임 등 세력 유지 |
| 경제력부족과 교육부족으로 고생하는 후손들 | 유학을 통한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후손들 |
| 오늘날 피지배계층 형성 | 오늘날 지배계층 형성 |
친일파들은 해방 후 군정기간 중에는 미국에 잘보이고, 정통성을 갖춘 임시정부의 김구에 붙으려다가 결국 이승만에게 협조하는 대가로 그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자유당 내내 애국독립투사들을 암살하였고, 반민특위 등의 활동을 무산시켰으며, 박정희군사독재정부시절에는 만주군출신에 남로당출신이었던 박정희의 반공이데올로기에 올라타 민족과 민주를 말하는 자들을 공산주의 '빨갱이'로 몰면서 살해하였고, 전두환, 노태우 시절까지 세력을 지속하였으며, 김영삼 정부시절 파티를 열다가 나라살림을 망치고, IMF위기때 DJ의 선처로 목숨을 부지하고, 노무현 정부때는 비협조, 버티기로 국민생활경제에 고통을 주고, 다시 재집권하여 잘 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맨인블랙'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영화 '맨인블랙'이 지구인에 섞여사는 외계인을 골라내는 일이라면 우리나라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 영역에 존재하는 친일파들을 골라내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살 것이냐?' 하는 주장은 이들의 말장난에 불과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가 비시정부이후에 했던 일을 우리는 아직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이곳(민족반역자 처단협회(http://cafe.daum.net/kokoin))을 가보시면 우리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던 독립운동가분들의 눈동자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긴 주제를 두 개의 포스팅으로 나누어 쓰면서도 같은 제목을 굳이 쓴 이유는 바로 '제목'을 맨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윤봉길의사가 저에게 해주는 한 마디는 바로 이것입니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정의를 추구하라."
